[후기 : 배급아카데미 5기] <미망> 언론/배급시사 후기 | 2024.11.1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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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기 : 배급아카데미 5기 후속과정] <미망> 언론/배급시사회 참여 후기 - 인디그라운드 배급아카데미 5기 수료생 정다영 - 좋아하는 마음 하나만으로는 부족하다는 것을 뒤늦게 아는 바람에 제때 어른이 되지 못한 지각생. 외줄 타기 하듯 휘청대며 근근이 살고 있다. 점점 날씨가 추워지면서 사람들의 몸을 두르는 옷도 더 두꺼워지고 있던 어느 11월의 가을날, 서울 한복판에 위치한 CGV용산아이파크몰점에서 영화 <미망>의 언론/배급 시사회가 진행되었다. 방학 시즌이 아닌 평일 낮임에도 불구하고 극장 안에 꽤 많은 사람이 돌아다니는 것을 보니 적당한 활기가 느껴지면서 왠지 모를 안도감이 들었다. 이 영화의 제목인 '미망'은 일상에서 잘 쓰이지 않는 생소한 단어로, 나 또한 거의 처음 들어보는 단어였는데, 영화를 통해 그 뜻을 접하고 싶어 일부러 사전에 검색해 보지 않고 영화를 관람했다. 건조한 일상에 굳어있는 관객들의 마음에 조금이나마 온기를 전하려는 영화의 의도를 암시하듯, 영화의 톤에 맞는 따뜻한 색감과 섬세한 디자인이 사용된 선재물이 가을의 계절감과 잘 어우러지면서 영화가 지닌 감성을 더욱 돋보이게 했다. 극 중 '여자'를 연기한 이명하 배우 또한 상영 후 진행된 기자간담회에서 영화 제목에 사용된 서체 디자인이 마음에 든다고 특별히 언급했을 정도. 김태양 감독은 '미망'을 한 가지 뜻에만 가두지 않고, 사전적 의미 세 가지를 모두 살려서 각 장의 첫 장면으로 배치했다. '사리에 어두워 갈피를 잡지 못하고 헤매다'라는 뜻풀이가 가장 먼저 등장하여 영화의 시작을 알린다. 소란한 낮, 도심 한복판에서 길을 헤매던 '남자'는 우연히 옛 연인이었던 '여자'를 마주친다. 두 번째로 등장하는 '잊으려 해도 잊을 수가 없다'는 문장은 극 중 새로운 인연의 가능성 앞에서 과거의 '남자'를 떠올리며 혼란을 겪는 '여자'의 마음을 대변한다. 마지막 장에서는 '멀리 넓게 바라보다'라는 뜻을 차용하면서, 돌고 돌아 끝내 다시금 마주한 남녀 사이의 관계를 내밀한 대화에서부터 찬찬히 살펴보며 시간의 흐름을 조망한다. 영화에 직접 그 이름이 나오지는 않지만, <미망>은 각기 다른 이름을 가진 3막 형식으로 구성되어 있다. 부산국제단편영화제, 서울독립영화제 등 유수의 영화제 수상 이력을 가진 단편 영화 <달팽이>와 <서울극장> 그리고 <소우>까지. 이러한 구조는 한 에피소드가 끝날 때마다 최소한의 갈무리를 해줌으로써 전체 서사의 흐름이 단조로워지지 않게 중간중간 쉼표를 찍는 역할을 한다. 그리고 각 장에서 '이순신 장군 동상'이라는 같은 소재의 이야기가 조금씩 변주되어 등장하는데, 이는 마치 칙칙한 회색빛 도심 속에서 보내는 하루하루가 반복되는 지루한 일상으로 느껴질 때도 있지만, 또 어느 순간 돌아보면 우리는 매번 새로운 관계 속에서 새로운 이야기를 만들어 나가고 있다는 사실을 일러주는 듯하다. 이 영화에서 관객의 이목을 한눈에 사로잡을 법한 극적인 장면은 등장하지 않는다. 그저 어느 여름날, 지나다니는 사람과 차로 가득한 종로 일대 거리에서 우연히 한 여자와 남자가 오랜만에 조우하고, 두 사람이 대화를 나누며 길을 걷는 상황이 오랫동안 이어진다. 언뜻 보면 자연스럽고 편안해 보이는 장면이지만, 계속 보다 보면 두 사람의 눈빛과 표정, 몸짓에서 말로 표현되지 않는 감정들이 느껴진다. 서로를 붙잡고 놔주지 않을 것 같은 분위기도 잠시, 아직 서로에게 무언가 할 말이 남아있는 듯한 아쉬움을 뒤로 한 채 두 사람은 다시 각자의 목적지를 향해 흩어진다. 서울의 어느 거리를 가든 흔히 마주칠 수 있는 일상적인 풍경이지만, 실제라면 잠깐 스쳐 지나가고 말 낯선 이들의 대화를 처음부터 끝까지 함께한다는 것은 우리에게 익숙하면서도 새로운 경험으로 다가온다. 카메라의 시선을 따라 끝까지 그들의 시간을 좇다 보면 어느새 극 중 인물들이 아닌 관객인 나로 돌아와서 자신이 맺고 있는 관계들에 대한 고민에 잠기게 되는 스스로를 발견할 수 있다. 이날 시사회에서 김태양 감독은 이 영화를 '사랑의 생로병사를 담아낸 로맨스 영화'라고 표현했다. 그는 자극적인 사건을 통해 관객들에게 충격을 안기기보다는 어떠한 사건 전후, 남은 지점에서의 일상을 통해 넌지시 질문을 던지기를 원했다. 이러한 다정한 방식을 통해 김태양 감독은 사랑의 과정에서 번번이 미끄러지는 순간들을 세밀하게 포착하여 부드럽고 잔잔한 연출로 관객들의 마음을 어루만지는 데 성공했다. 배우들의 과장되지 않고 절제된 연기 또한 이 영화의 섬세함을 배가시키는 데 한몫한다. 먼저 '여자(이명하 役)'는 낮과 밤을 반복하여 오가며 과거와 미래가 혼재되어 있는 종로-을지로 일대를 누비는데, 한밤중에 초고층 빌딩 도심 사이를 걷는 두 번째 장이 특히 인상 깊다. 일에 치여 사적인 감정들은 미뤄둔 채 하루를 보내다가, 하루 끝에 단비처럼 마주한 조카의 사랑스러운 말 한마디에 녹아버리는 그 순간의 정직한 눈물은 가슴 찡한 공감을 자아낸다. 영화의 첫 장면과 마지막 장면, 즉 시작과 끝을 모두 홀로 맡고 있는 '남자(하성국 役)'의 담백한 연기 또한 주목할 만하다. 외로움의 그림자를 지고 있는 그의 나른한 표정과 말씨는 영화 전반에 흐르는 쓸쓸한 분위기를 견인하면서도, 관객들을 환상과 현실 사이 위치한 모호한 꿈속으로 데려간다. 배우들의 호연에 더해, 음악 또한 영화가 가진 애틋한 정서를 잘 표현해 주고 있다. 마지막 장에서 '남자'가 직접 기타를 치며 부르기도 하고, 엔딩 크레딧 곡으로도 등장하는 이 노래는 바로 밴드 '장기하와 얼굴들'의 '별거 아니라고'. 슬픔을 담담하게 감내하며 부르는 듯한 서정적인 멜로디는 한 단어로 일축하기 어려운 복잡하고 내밀한 인물들 간의 관계와 그사이를 오고 가는 감정선을 대변한다. '알고 보면 다 별거 아니라고' 말하는 가사는 극 중 인물들뿐만 아니라 스크린 밖 관객들의 마음마저 위로하며 영화의 여운을 더욱 오랫동안 가시지 않게 한다. "내가 기억을 잘 못해도 괜찮아요?" "괜찮아, 어차피 다 기억할 수 없으니까." 이 같은 '남자'와 '연인'의 대화처럼, 우리도 복잡다단한 삶 속에서 길을 잃고 미망(迷妄)한 서로에게 혹은 자신에게 조금은 헤매어도 괜찮다고, 너그러이 미망(彌望)하고 다독이며 살아가 보는 것이 어떨까. 우리가 한때 잠깐 맺었던 인연이라도 그때의 시간이 서로에게 완전히 잊히고 무용해지는 것이 아니라, 눈에 보이지 않아도 서로에게 묻은 함께한 시간의 흔적을 통해 우리는 여전히 늘 함께 살아가고 있다는 위로를 전하는 영화 <미망>. 앞으로 더 많은 현대인에게 삭막한 도시 생활의 고단함 속에서도 최소한의 낭만은 잃지 않게 만드는 한 줄기 태양 빛과 같은 영화로 전해질 수 있기를 바란다. ○ <인디그라운드 배급아카데미>에서는 정규과정 이후에 수료생들의 자발적인 활동을 지원해 왔습니다. 이번 5기에서는 후속 활동과 함께 독립예술영화 현장의 분위기를 엿볼 수 있도록 ‘현장체험’을 함께 합니다. 개봉 직전 진행되는 언론배급 시사회 등을 찾아가 관계자들의 역할과 진행 과정을 살펴보며 독립예술영화 배급 현장에 한 걸음 더 가까이 들어가 보고자 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