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 개봉작] 소리로 살아나는 기억, 복원되는 표정과 떨림 <되살아나는 목소리> | 2024.11.15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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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되살아나는 목소리> ○ 글 : 이원우 (영화 감독)
<되살아나는 목소리>에는 세 개의 한국어 노래가 있다. 이 곡들은 오십 년 넘게 영화를 만들어온 감독의 주된 정서이자 영화로 기록된 재일 동포들이 공유하는 공통의 감정으로 들려진다. ‘마의태자’, ‘신세타령’, ‘봉선화’ 세 노래만큼 영화는 처량하고도 매혹적이다. 한 많은 우리 민족의 역사가 성실하고 치열하게 집요하고도 친근하게 기록되었기 때문이다. 수십 년 전의 촬영 필름을 새롭게 찾아 영사하는 시간 속에서 한국인으로 학습되었던 익숙한 정서가 생경하게 살아난다. 감독 개인의 기억이 민족 공동의 기억으로 되살아나는 체험을 영화를 통해 하게 되는 것이다. 그래서 그 기억이 아름답냐면 너무나 끔찍하다. 추악하고 흉흉해서 미래 세대는 몰랐으면 하는 비극. 그러나 덮이고 묻힌 것을 다 꺼내 확인하고 밝혀야 제대로 울고, 화내고, 위로하고 나아갈 수 있는 것임을 영화의 안내자는 정정하게 앞장서 이끈다. ‘마의태자’ 노래는 영화의 앞부분에 나온다. 박수남 감독이 이 영화의 공동 연출이자 공동 주인공인 박마의 감독에게 지어준 이름인 ‘마의’가 이 노래에서 따왔다는 이야기로 영화는 시작한다. “그 나라 망하니 베 옷을 감으시고, 그 영화 버리니 풀뿌리 맛보셨네, 애 닮다 우리 태자, 그 어인 일인고...” 망한 나라의 왕자. 그의 신세를 확인할 수 있는 삼베옷인 ‘마의’를 딸의 이름으로 짓는 박수남은 젊어서부터 평범한 인물은 아니었다. 보통은 미래의 낙관, 바램, 욕망을 자식의 이름으로 지을 법한데 싱글맘 박수남은 감독이 되기 전에 딸의 이름에 자신의 세계관을 적용했다. 그는 타고난 예술가이자 활동가였을까. 그도 한때는 일본의 명문 사립학교에 진학하는 꿈을 키웠던 황제의 신민이었는데 자신의 의지가 아닌 부모님의 뜻으로 조선인학교에 가게 되었다는 사실. 그리고 그 학교에 일본 경찰이 쳐들어와 운동장 한가운데 폭력적인 진압 속에서 새로운 자아를 갖게 되었다는 이야기에 당시 재일 동포들의 평범할 수 없는 삶을 엿보게 된다. 비범은 뛰어남이 아닌 비극의 정의였다. 학교 진학부터 취업까지 재일 동포들은 차별과 장애물을 마주했다. 극복할 수 없는 정체성인 민족인으로 주변에 머물러야 했던 이들은 자신들의 민족이 어떤 배경과 역사를 가지고 일본에서 살아가는지도 모른 체 차별을 마주하기 십상이었다. 망한 나라 백성의 신세였다. 영화의 처음부터 마지막까지 박수남 감독이 타인의 이야기이자 동포의 목소리에 관심을 갖게 된 사건은 그림자처럼 드리워져 있다. 재일 동포 2세로 본명이 이진우인 강간살인사건의 범죄자. 그의 구속에 일본 사회의 지식인들이 목소리를 내었다. 일본 사회 안의 공공연한 차별이 있었기에 가능했던 문제의식이자 진보적이고 성숙한 지식인들의 구명운동이었을 것임을 짐작한다. 이를 통해 성공한 음식점 사장이었던 박수남은 이진우의 범죄 피해자 일본인 가족을 찾아가고, 이진우에게 편지를 쓰고, 면회를 간다. 일면식이 없었던 관계였다. 영화를 보는 관객보다 일본인 피해자 가족이 오래전, 먼저 놀랐다. 알지도 못하는 사이인데 왜 같은 민족이라는 이유만으로 추모와 사과를 하러 오느냐며 이유를 물었다. 이진우는 한글도 몰랐다. 박수남과는 일본어로 편지를 주고받았다. 자신의 한국어 이름을 사형이 집행되기 직전에야 찾았다. 하지만 그의 삶은 조선인으로 받은 차별로 옥죄어 있었다. 그의 어머니는 청각장애인이었고, 집은 찢어지게 가난했다. 그가 어떤 상황에 처해있던지 그의 범죄는 명백했고 그 어떤 상황도 면죄부로 설명될 수는 없다. 왜 박수남은 이진우를, 어떻게 강간살해범을, 무슨 이유로 찾아가고, 친밀한 관계를 맺으며 자신의 일상을 바꾸고, 인생을 바꿨을까. 그리고 영화에서도 적극적으로 드러냈을까. ‘고마쓰가와 사건’으로 불리는 이 강력 범죄는 현재의 관객만이 아닌 당시의 모두에게 불편한 사건이었다. 민족 교육을 지원하며 일본에 있는 동포들을 북한으로 귀국시키는 ‘귀국사업’에도 부정적 여론을 주는 일이라 조총련에서는 당시 기자로 소속되어 있던 박수남에게 손을 떼라고 했다. 박수남은 거부했고 북한과의 관계는 그렇게 끊어졌다. 이미 차별이 공공연한데, 조선인=흉악범의 인상을 줄 수 있는 상황이니 남쪽인 민단도 한반도의 남북 정부도 지원과 동조는 있을 리 만무했다. 마치 재일 동포의 상황은 재일 동포만이 알 수 있는 것처럼 고립을 각오하며 관계를 지속한 박수남은 이진우에게 누나 소리를 듣게 되고, 오고 간 편지로 이진우의 사후에 책을 쓴다. 동포사회에서 무소속이 된 그는 책의 출간 이후 오히려 수많은 연락을 받고, 일본 전국의 동포들을 만나게 된다. 억압과 무력 속에 한탄하는 이들의 사연들이 박수남에게 모여든다. 도쿄 조선학교의 교장조차 자신이 교원이 되고, 교장이 된 출발점에는 그 책이 있었기 때문이라고 소개한다. 일본인들도 재일 동포 2세들의 상황을 알게 되고 여러 가지 의미 있는 파장을 일으킨다. 그러나 여전히 본인도 여성이고 딸을 가진 엄마이기도 한 그가 이진우에게 갖는 감정의 깊이와 결은 어렵다. 굵직하고 중요한 역사를 다룬 그의 영화들. 일본 정부에게 소외된 재일 동포 원폭 피해자들을 다룬 <또 하나의 히로시마 - 아리랑의 노래>, 처음으로 위안부의 존재와 목소리를 다룬 <아리랑의 노래 - 오키나와에서의 증언>, 일본이 오랫동안 부정해온 강제징집과 가혹한 노동에 대한 <누치가후 - 옥쇄장으로부터의 증언>, 오랜 세월동안 함께 해온 위안부 여성들을 박수남만의 관계와 시각으로 풀어낸 <침묵>에 이르는 대작들을 만든 여정이 이 영화 안에 자리가 비좁게 가득 차 있는데도, 이진우에 대한 언급은 영화 후반에도 이어진다. 박수남의 영화들에서는 끊임없이 일본의 가해사실에 대한 증언이 있다. 역사 안에서 재일 동포는 존재의 출발과 모든 과정이 피해로 요약된다. 가해의 역사와 피해의 역사는 동시에 생성되지만 가해자들은 증언하지 않는다. 자신의 가해사실을 굳이 밝히지 않고, 기록하지 않는다. 심지어 끊임없이 왜곡하고 지우려 한다. 피해자들도 처음부터 증언했던 것은 아니다. 피해 사실을 밝히고, 따져 물을 힘과 위치를 획득하는 것부터가 불가능한 것이 피해의 증거였다. 박수남은 펜으로 시작해 증언을 찾아 나섰고, 피해자들의 떨림, 말하지 못함, 침묵의 시간을 담기 위해 카메라와 녹음기를 들었다. 이진우는 박수남을 통해 살인의 실체, 잔인함과 끔찍함을 깨달았다. 그는 흉악범으로 잡혔지만 온전한 인간으로 흉악범이지 않았다. 재일 동포는 인간으로 완전할 수 없었다. 인간이 되어야 인간으로 죽을 수 있다. 인간이 인간에게 저지른 범죄가 되기 위해 이진우는 이름부터 찾아야 했다. 박수남이 만난 수많은 피해자 중에 어쩌면 유일한 가해자인 그는 그렇게 민족 정체성을 찾고 죽게 된다. 두 번째 노래 ‘신세타령’은 박수남 어머니의 노래다. 박수남의 여동생은 귀국선을 타고 북한으로 갔다. 박마의가 학교여행으로 북한에 가서 63년에 일본을 떠난 이모를 만난 것은 85년이었다. “오른팔도 내 팔이요 왼팔도 내 팔이요”라는 가사가 사무치는 신세타령은 이모를 만난 박마의가 할머니에게 이모의 안부를 전한 것에 대한 답이었다. 조선인학교에 간 많은 재일 동포들처럼 박수남의 어머니도 남쪽 출신이었다. 박수남의 부모가 일본으로 건너 간 것은 조선이 해방되기 전이었고, 박수남도 해방전인 1935년도에 태어났다. ‘고마쓰가와 사건’이후로 북한에서 쫓겨난 박수남이지만 그의 마음은 평생 북에 있는 여동생을 향하게 된다. 분단된 조국, 역사를 부정하는 일본, 사이에서 그의 필름은 이어졌다. 최근에 유네스코 문화재 등재로 유명해진 ‘군함도’도 오래전 박수남의 카메라에 성실히 담겼다. 조선인과 중국인들이 일본인에 섞여 지옥 같은 섬에 갇혀 죽음만이 자유가 되는 곳에서 가혹한 노동을 했다. 위안부까지 있었던 것을 당시 강제징집된 노동자였던 생존 피해자의 증언으로 밝혀진다. 그 증언과 촬영이 존재한다는 사실이 다행이면서 끔찍하다. 악몽이길 바랐던 역사는 사실이 숨겨지고 왜곡되어 도쿄 시내 한복판에 강제징용은 없었다는 듯이 선전되고 그 앞에 휠체어를 탄 박수남의 모습을 보는 것은 2024년의 현재, 새로운 비극 역사의 현장이다. 마지막 노래는 ‘봉선화’다. 촬영을 하러 갔다가 고통과 침묵 속에 돌아가신 분들에게 드릴 것이 없어 박수남 감독이 헌화하듯 부른 노래. “북풍한설 찬 바람에 네 형체가 없어져도 평화로운 꿈을 꾸는 너의 혼은 예 있으니 화창스런 봄바람에 환생 키를 바라노라” 일제 강점기에 서글픈 민족의 슬픔으로만 알고 있던 이 노래의 배경은 관동대학살이었다. 그리고 이진우가 죽인 피해 여성의 부모는 자신들의 딸이 살해당한 사건에서 관동대학살을 기억해 냈다. 자신의 형제들이 잔인하게 조선인을 죽였다고, 강물이 핏빛으로 며칠을 흘렀다고 회상했다. 정리하지 못하고 어영부영 덮은 비극이 결국 새로운 비극으로 이어졌다고 생각하는 것인지 역사가 정리되지 않은 상황에서 피해자의 피해성마저 흐려지는 아이러니. 혐오와 오해와 비극의 악순환이 역사의 청산에 있다. 영화를 통해 혐오와 역사왜곡은 민족성이 아니라고 생각된다. 이진우 사건 때부터 조선인 차별에 제동을 걸고 조선인들을 돕는 일본인들이 있었다. 헤이트 스피치를 하는 이들 앞에서 박수남 감독의 영화 상영회를 지원하고 지키는 일본인들도 있다. 박마의 감독은 자신에게 일본의 피가 있다고 하고 사랑스런 조카도 일본인과 한국인의 피를 나눠 가졌다고 말한다. 우리가 인간 대 인간으로 만나 함께 아시아의 평화를 꿈꾸고 만들기 위해서 핏빛 강을 먼저 보아야 할 이유다. 그리고 동시대 한국에서 우리 안의 소수자와 외국인을 향한 혐오에 대해 살펴보게 된다. 극장 밖에서 곱씹는 ‘되살아나는 목소리’는 존재이자 감각, 정체성이자 평화의 가능성으로 들려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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