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인공 춘희가 자신을 사랑하지 못하는 까닭은 다한증, 무주택자, 빈곤 청년 등 춘희가 선택하지 않은 문제들 때문입니다. 그리고 이 모든 발단은 춘희가 혼자가 되면서부터 입니다. 춘희의 가족은 영화가 암시하는 바, IMF 때 경제적 궁지에 몰리면서 죽음을 택했습니다. 그 시절 빈번하게 일어났던 '사회적 타살'이었습니다. 이후 춘희는 외삼촌 집에 맡겨지지만, 그들은 춘희의 가족이 되어주지 않습니다. 외로운 춘희는 그럼에도 씩씩하고 생활력 강한 어른으로 자라납니다. 어느 날, 그런 춘희에게 사랑이 찾아오고 드디어 춘희 인생도 행복을 향해 가는 듯했습니다. 그러나 별안간 사촌오빠가 상의도 없이 집을 팔고, 다한증 수술비용을 사기 당하자, 춘희는 그만 스스로에게 이렇게 말해버립니다. "그냥 그때 같이 죽지 그랬어."
아무리 긍정적인 춘희여도 버팀목 없이 자꾸만 들이치는 파도에는 무력해질 수밖에 없습니다. 춘희처럼 사기를 당했을 때, 친한 친구나 가족이 하늘나라에 갔을 때, 혹은 갑자기 해고당하거나 폭우로 집이 떠밀려 갔을 때,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어떻게 해야 '그때 죽을 걸'이 아니라, '태어나길 잘했어'라고 말할 수 있을까요? 이는 누구에게나 어려운 문제입니다. 우리 모두 평생에 걸쳐 해결해야 하는 문제이기도 합니다. 당장 이 질문에 대답을 하기 어려운 것도 당연합니다. 하지만 영화는 춘희를 통해 그럼에도 살아있는 일은 가치 있다고 강력하게 이야기합니다. 나아가 가치 있는 삶을 보호하기 위해서 우리가 해야 할 일이 무엇인지 그 다음을 묻고 있는 듯도 합니다. 영화의 말을 빌려, 우리가 해야 할 일이란 아마 춘희와 주황이 그랬듯 서로가 서로를, 공동체와 사회가 "지켜주는 일"이 아닐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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