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년 전만 해도 '88만원 세대'라는 말이 유행했습니다. 비정규직과 저임금 노동으로 내몰린 청년층의 빈곤을 표현한 말입니다. 암담한 세대론은 지금도 별반 다를 것이 없습니다. 20대의 초상은 월세를 내기 위해 아르바이트를 전전하며 불투명한 미래에 겁먹은 얼굴입니다. 그러나 <액션히어로>의 이진호 감독은 "주변에서 보게 되는 젊은이들의 모습은 분노와 신음 소리보다는 그 나름의 해탈을 안고 살아"간다며 절망보단 유쾌한 액션 활극 속에 청년들의 모습을 풀어내려 했다고 말합니다. 감독의 말처럼, 영화 속 인물들은 '갑질 당하는 대학원 조교', '아싸', '공무원 준비생' 같이 청년을 주인공으로 하는 영화에서 흔히 등장하는 군상이지만 결코 뻔하게 움직이지 않습니다. 조교는 갑질 교수를 협박해서 치킨집 창업 자금을 얻어내려 하고, 배우의 꿈을 꾸는 공시생은 액션 영웅이 되기 위해 이 과정을 도촬합니다. 이들의 어이없는 욕망은 나름대로의 절박함이 있어 서로의 계획을 방해하고, 더 꼬이게 만들며 영화를 이끕니다. 그러니 '영웅 등장'이라는 문구로 시작하는 영화에는 모순되게도 영웅 행세를 하는 주성만 있지 진짜 영웅은 없습니다.
그러나 마지막에 이르러, 영화는 순간 다른 국면으로 넘어갑니다. 부당하게 당하는 타자를 그냥 두고 볼 수 없어지는 때, 모두가 자기 자신의 이해관계를 벗어나 진정한 영웅으로 거듭납니다. 학생들이 몰려오자 지치고 무기력해 있던 선아는 싸워야 할 이유를 되찾고 뛰어올라 엄청나게 경쾌한 이단 옆차기를 보여줍니다. 무거운 현실 앞에서도 가벼울 수 있는 힘, 영화의 생명력은 이처럼 젊음을 불행한 것이 아니라 세상을 바꿀 수 있는 가능성으로 파악하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생명력, 젊음, 눈앞에 펼쳐진 미래는 우리가 순응하거나 익숙해져야 하는 세상이 아니라 만들어 나가야 할 세상인 것입니다. 영화의 마지막 문구처럼, 우리는 함께니까 싸워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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