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을 지운 말의 길에서 말의 시간을 기억해 본다. 아무나 타지 못했던 말, 권력과 폭력의 중심에 있어야 했던 초식동물, 운동과 노동의 경계에서 때로는 존재가 저항이 되기도, 체제가 되기도 하는 아이러니. 말 위가 아닌 말 아래의 사람들이 보낸 긴 시간. 말의 귀와 입을 빌려 감각해 본다. 흐릿하지만 넓은 시야, 멀고 가까운 지나가는 혼잣말들.
연출의도
2010년, 우연히 서울 한복판 청계천에서 마차를 발견해 찍게 되었다. 말을 만날 리 없는 곳에서 발견한 존재는 너무나 신기했고, 말에 무지 했던 나는 감탄만 했다. 의도치 않게 곳곳에서 말의 동상과 말들을 만나며 새로운 감각과 오래된 역사를 교차하며 말에게 천천히 다가가게 되었다. 끊어진 길 들과 새로 이어진 길들 사이에 가로막힌 존재들, 스스로 길이 되어버린 이들의 발자국을 따라가다 보면 상상의 동물 기린도 만날 수 있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