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조업 회사의 영업사원인 지훈은 휴가 날 아침 고객사 자재반장인 정규의 전화를 받는다. 전화를 무시하고 싶지만, 평소 비합리적인 요구를 많이 하는 정규의 보복이 두렵기에 어쩔 수 없다. 지훈은 정규에게 자신이 휴가 중임을 은근히 밝히지만, 정규는 아랑곳하지 않는다.
정규는 지훈에게 오늘 납품된 제품을 다시 갖고 가라고 한다. 정상 제품임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회사에서는 소량만 사용한다며 소량을 제외하고는 반품해 달라고 하는 것이다. 지훈은 포장을 뜯은 제품은 반품이 어렵다고 설명하나, 정규는 막무가내다. 갖고 가지 않으면 제품을 밖에다 버려 놓겠다고 한다. 어이가 없어진 지훈은 정규의 말에 실소한다. 지훈의 웃음소리를 들은 정규는 지훈이 예의가 없다며 버럭 화를 낸다. 당황한 지훈은 더 이상 정규에게 따지지 못하고, 확인해보겠다는 말과 함께 급하게 전화를 끊는다.
전화를 끊은 지훈은 정규를 향해 혼자 욕을 한다. 그러면서 자신의 팀장에게 전화를 건다. 하지만 팀장은 전화를 받지 않는다. 더욱 짜증이 나는 그때, 모르는 번호로 전화가 온다. 팀장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전화를 받는다. 하지만 전화는 주간지 구독을 요청하는 은주의 전화다. 지훈의 주간지 구독이 끝나감에 따라 구독을 연장해 달라고 한다. 지훈은 구독 연장을 거부하였으나, 은주가 지훈에게 간곡히 구독을 요청한다. 자신의 기분을 살피는 은주의 전화에 지훈은 우쭐해진다. 지훈은 은주에게 정규와 똑같이 갑질을 한다. 주간지를 구독하는 대신, 주간지를 받고 싶을 때만 받겠다며, 매주 전화를 주면 그 주에 받을지 말지 결정하겠다고 한다. 그러자 은주가 지훈에게 화를 내며 자신에게 갑질을 그만할 것을 요구한다. 당황한 지훈은 은주의 전화를 끊어버린다.
지훈은 자신과 다르게 부당한 요구에 화를 내는 사람을 만났기에 기분이 이상하다. 정규와 똑같이 행동하는 자신이 싫고, 정규에게 화를 내지 못한 것도 부끄럽다. 그때, 다시 정규에게 전화가 온다. 정규는 팀장에게 반품하는 것을 허락받았냐고 묻는다. 지훈이 그러지 못했다고 하자 정규는 이전 통화보다 더 강하게 제품을 반품해 가라고 압박한다. 정규의 그러한 태도 때문에 지훈은 화가 난다. 지훈은 정규에게 화를 내려고 하지만, 그뿐이다. 지훈은 은주와 다르게 화를 내지 못하고 정규에게 굴복한다. 지훈은 그런 자신 스스로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
연출의도
우리 사회는 ‘갑’과 ‘을’로 구성되어 있다. 자본주의 사회이기 때문에 그렇다. 자본으로 재화나 서비스를 구매하는 행위가 자본주의의 기본 단위다. 그렇기에 자본주의 사회에는 구매력이 있는 ‘갑’과 재화나 서비스를 제공하는 ‘을’이 존재하게 된다. 그 자본주의 사회를 이루는 두 주체의 관계를, 우리는 흔히 ‘갑을 관계’라고 말한다.
이상하게도 우리 사회는 ‘을’이 ‘갑’에게 재화나 서비스만 제공하지 않는다. 갑의 불합리한 행태, 이른바 ‘갑질’을 감내하는 것도 거래에 포함되어 있다. 불합리한 행태에는 마땅히 목소리 내고 시정을 요청해야 하나, ‘을’은 그러지 않는다. 자본주의 사회를 살아가기 위해서는 ‘갑’에게 얻는 자본이 중요하기 때문일 것이다.
문제는 갑질을 감내하다 보면 무기력해지거나, ‘나만 당할 수 없다’는 생각에 갑질을 할 수 있는 상황이 되면 적극적으로 갑질을 하게 된다는 점이다. 물론, 이는 경험을 통해 얻은 지혜일 수 있다. 지금 한 번 참음으로써 후환을 막거나, ‘을’에게 윽박지르면서 내가 원하는 것을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이런 지혜로운 행동들을 가리켜 ‘그렇게 어른이 되는 거다’고 권장하기도 한다. 이렇게 사소한 갑질을 감내하거나, 사소한 갑질을 하게 된다.
이렇게 함으로 후환을 없애거나, 이익을 얻을 수 있다. 당장 마음의 평화를 얻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자신에게 생기는 감정의 상처는 어쩔 수 없다. 아무리 ‘나는 어른이야’라고 스스로 자위해봐도 해결이 안 된다. 옳지 못한 일에 목소리 내지 못할 때 생기는 비굴함, 힘 있는 자에게 굴종할 때 생기는 비참함 말이다. 알량한 권력이 생겼을 때, 적극적으로 타인을 굴복시켰을 때 느끼는 스스로에의 실망감 말이다. 당장 몸과 마음이 편안할지는 몰라도, 자신에게 당당할 수는 없다.
<너도 내가 마음에 안 들겠지, 나도 그래>는 불합리에 비판하지 못하는 직장인의 모습을 다룬다. 주간지 영업사원인 은주는 주인공인 지훈의 부당함에 목소리 내지만, 지훈은 자신의 ‘갑’인 정규에게 굴종하면서 스스로 부끄럽게 여긴다는 이야기다. 그 과정에서 갑질이 주는 스트레스를 표현하고, 갑에게 따지고 싶지만 그러지 못하는, 그럼으로써 자괴감을 느끼는 평범한 우리들의 감정을 다루고자 한다. 이를 통해 관객들의 공감을 끌어냄과 동시에, ‘나는 똑같은 상황에서 어떻게 할 것인가’라는 질문을 던짐으로써, 갑질 사회에 관한 생각의 공간을 관객들에게 제공해 주고 싶다.
감독작품경력
[너도 내가 마음에 안 들겠지, 나도 그래](2023)
[출산율을 높이는 방법](2022)
[유사연애](2021)
[월리의 죽음](20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