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상 속 화자가 오래전에 물려받은 조부의 기록물들을 거꾸로 추적해 가면서 조부의 생애를 재구성하는 작품이다. 조부의 고향인 1960년대 창녕에서 시작해 70년대 구로 공업단지로, 90년대 고척동 주택가와 2000년대 파주 사찰 납골당을 경유해 다시 우포늪으로 돌아가는 이야기 구조는 조부의 일생을 정직하게 답습한다. 화자는 기록물에 남아 있는 단서들과 육친들의 증언을 바탕으로 실제 주소지를 찾아가 본다. 구글 어스는 이 장소들에 즉각 방문해 볼 수 있는 접속 링크로 사용된다. 먼 옛날의 지리적 풍경들은 군사위성 시점으로 누그러진 2차원 이미지가 아니라 삼중 굴절된 시간의 결과물처럼 주어진다. 이 과정에서 화자는 자신의 시제와 조부의 시제가 연거푸 충돌하는 현상을 경험하며, 죽은 조부를 향해 끊임없이 질문을 던진다.
연출의도
너는 누구인가? 너는 어디에서 왔는가? 이렇게 나 자신의 기원을 2인칭 목소리로 요청해 볼 때, 가장 먼저 주어지는 단서는 이름이다. 한국식 작명 방식은 매우 독특한데, 이름을 구성하는 글자들이 제각기 존재를 규명하는 까닭이다. 예컨대 성씨는 한 사람의 기원을 나타내고, 가운데 이름은 친족 내부의 종적 세대관계를, 마지막 이름은 마침내 그의 운명으로 부가된다. 아주 드문 사례를 제외하면, 대다수의 한국인들은 이미 태어나기 전부터 누군가의 후손으로 점지되는 것이다. 다시 말해, 이들은 스스로 이름을 폐기하지 않는 한 죽을 때까지 친족집단과의 관계로부터 벗어날 수 없다. 우리는 우리가 물려받은 성씨와 이름, 외모만큼이나 운명도 물려받는가? 우리는 우리보다 앞서 죽은 선조들과 다른 운명을 살 수 없는가? 이 질문에 답해 보기. 죽은 조부에게 쓰는 처음이자 마지막 편지를 쓰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