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스를 기점부터 종점까지 타고 영화를 만드는 과제가 있었다. 수비는 자신이 살았던 모든 집과 학교, 남친 집, 전남친 집, 알바하던 타코가게에 7011 버스가 있었다는 게 신기하다고 했다. 그래서 수비에 대한 영화를 만들기로 했고 나는 그 버스를 탔다. 은평차고지에서 시작해서 은평차고지로 되돌아가는 버스에서 수비에 대해, 수비가 만드는 작업에 대해 생각했지만 도입부의 글은 결국 나에 대한 이야기였다. 재활용 플라스틱 얘기. 좋아하던 남자 얘기. 촬영을 앞두고 수비는 갑작스럽게 세상을 떠났다. 그 친구의 마지막 밤에 우리는 노래방에 갔었다. 의도하지 않았고 만들고 싶지 않은 영화가 첫 작업이 되었다. 괴롭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