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게 촛불은 매혹이었다. 세상에 마침내 종말이 찾아온다면 이런 모습이지 않을까 상상했다. 광장의 사람들은 웃고 울고 소리쳤다. 내 손 안의 작은 열기 덕분에 종말 이후 찾아올 새로운 세상을 상상할 수 있었다. 일렁이는 불꽃에 매혹당하여, 나는 촛불을 들 여유가 없는 사람들을, 광장을 갖지 못한 사람들을 떠올리지 않았다.
연출의도
이 영화는 내가 촬영하지 않은 세 사람에 대한 기록이다. 세 사람은 지난 20년 간 한국사회에서 반복된 세 번의 촛불집회에서 각각의 실패를 겪었다. 그 누구보다도 촛불의 힘을 믿었던 이들은 어느순간 침묵과 증발을 택했다. 나의 좌절과 실패 역시, 그들의 것과 조금도 다르지 않다.
현실의 종말은 내가 2016년 겨울에 상상했던 것과는 전혀 달랐다. 종말은 시끄럽지도, 뜨겁지도 않았다. 표정을 가린 사람들과 차가운 침묵 속에 종말은 찾아왔다. 설령 촛불이, 촛불이 보여준 종말이 단순한 매혹이었을지라도. 다시금 거짓된 종말을 복기하고 꿈꾸는 일은, 이미 찾아온 지금의 종말에 대한 작은 저항이 될 수는 있을 것이다. 끝없이 상상하고, 필사적으로 기억하는 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