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주로 떠나는 남자
우주로의 출장을 준비하는 우주비행사의 모습은 그동안 우리가 TV나 영화를 통해 보아왔던 비장미 넘치는 모습의 그것이 아니다. 전지구적인 사명감을 안고 멋지게 밤하늘로 돌격하는 영웅의 모습이 아니라, 그냥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보통의 직업인일 뿐이다. 작업복에 달린 ‘우주관리공사’라는 명찰 만으로 겨우 그가 우주를 비행하는 사람임을 확인할 수 있다. 그는 일을 하거나, 누워 있거나, 거울을 응시하거나, 산책을 하며 커피를 마신다. 그리고 그는 두꺼운 우주복을 챙겨 입고 목적지로 향한다.
원주로 출장을 간 남자
건축 잡지사에 취직하게 된 남자. 면접 때 잠깐 본 사장은 출근 3일째까지 모습을 볼 수가 없다. 그 사이 남자는 계단에서 굴러 팔이 부러지기도 하고, 길에서 만난 어떤 이로부터 “우리는 486대 1의 경쟁률을 뚫고 살아 남았어요! 힘내세요!”라는 황당한 내용의 메시지를 듣기도 한다. 그러던 어느 날, 드디어 다시 모습을 드러낸 사장은 그를 데리고 원주로 출장을 떠난다. 원주에서 일정을 마치고 하룻밤 자고 가자는 사장의 제안을 뿌리친 남자는 막차를 타고 돌아온다.
제주도로 여행 간 여자
나이와 배경을 알 수 없는 어떤 여자. 제주도로 여행을 떠난다. 호텔방으로 들어 온 여자는 혼자서 와인을 마시고, 요가를 하기도 하고, 라면을 먹으며 시간을 보낸다. 그러다 차를 빌려 보지만, 겨우 호텔 주변만을 뱅글거리며 돌 뿐이다. 좀더 멀리 달려 도착한 산 정상. 그 곳에서 망원경을 통해 어딘가를 응시하던 여자는 ‘안보여’라고 말한다.
연출의도
다른 공간, 다른 시간, 다른 꿈을 꾸는 사람들의 이야기
: 열린 감성으로 보는 영화 <빛나는 거짓>
HD 독립장편영화 <빛나는 거짓>은 영화 매체가 가진 새로운 가능성을 실현하려는 채기 감독의 일곱번째 작품이자 첫번째 장편영화이다. <빛나는 거짓>은 우주관리공사에서 일하는 남자, 잡지사에서 일하는 남자, 제주도로 여행을 떠난 여자 등 평범한 것 같지만 아주 특별한 세 사람에 관한 이야기다. 카메라는 이 세 인물을 따라 정교하게 움직이지만 특별한 드라마는 없다.
이 영화는 내러티브 중심의 영화가 아니다. 일상 속의 평범한 이미지들을 나열하고, 관객 스스로가 그 이미지들을 조합함으로써 자신들만의 정서와 감성을 느낄 수 있기를 바라는 열린 영화이다. 충격적 사건 없이, 별다른 테크닉 없이, 그저 흐르듯이 진행되는 세 인물의 건조한 일상들을 지켜보면서 관객들은 스스로의 마음 속 변화와 반응, 영화로부터 받은 감정과 정서에만 몰입하면 된다.
처음부터 끝까지 꽉 짜여진 줄거리를 따라 영화를 보는 것이 아니라 영화 속의 빈 공간, 빈 시간을 관객 스스로가 채워가는 기분으로, 그래서 영화를 통해 관객 스스로가 자신만의 정서와 감성을 만들 수 있도록 만든 영화가 바로 <빛나는 거짓>이다. 천천히 세 인물들이 만들어내는 미세한 감성의 울림을 따라가다 보면 어느 순간 감독이 말하고자 하는 거짓말 같은 꿈의 순간을 만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