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이 가득 찬 지하철에서 희정은 자신의 속옷이 밖으로 삐져나온 것을 발견하고 옷차림을 추스른다. 성적으로 위축된 희정은 맞은편에 서 있는 능글맞게 생긴 남자를 경계하며 그의 손을 살핀다. 남자는 아무 짓도 안하고 있다. 무심히 몸을 움직이다가 희정은 옆에 서있던 얌전하게 생긴 학생이 지금까지 자신을 만지고 있었음을 알게 된다. 희정은 몹시 불쾌하다.
달리던 지하철이 덜컹한다. 그 바람에 희정의 손이 앞에 서 있던 여자의 엉덩이를 건드리게 된다. 희정은 자기도 한번 여자의 엉덩이를 만지고 싶은 충동을 느낀다. 조심스럽게 여자의 엉덩이를 만지는 희정. 여자는 이를 아는지 모르는지 가만히 있다. 희정, 계속 만져본다. 지하철이 서고 여자가 내리려고 한다. 희정은 그녀의 얼굴을 확인하고 싶다. 그녀의 뒤를 쫓아가지만 사람들 때문에 끝내 그녀의 얼굴을 보지 못한다. 여자의 뒷모습을 뒤로 한 채 지하철은 떠난다.
연출의도
영화에는 지하철에서 앞에 서 있는 여자의 엉덩이를 만지는 한 여자가 나온다. 나는 관객들이 그녀의 그러한 충동적이고 왜곡된 행동의 이면에 자리하고 있는 성에 대한 피해의식을 읽어주기 바란다. 그리고 그 피해의식은 한 개인의 특수한 성향이 아니라 다름 아닌 성적인 억압에서 비롯된다는 것도.
요즘은 기존의 성의 질서와 부딪히며 새로운 성의 구도를 고민하는 많은 사람들이 있다. 그들이 때로는 중심을 잃고 한쪽으로 경도 되거나 자기모순에 빠지거나 신경증 적인 모습을 보인다 할지라도 나는 그들을 지지한다. 왜냐면 그것이 변화를 위한 출발이자 과정이라고 여기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지하철의 그녀를 사랑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