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석은 산업재해로 시한부 판정을 받자 고향인 남면으로 향한다. 사람들이 죄다 도시로 떠난 마을, 이제는 폐가가 되어버린 옛집. 그를 맞이하는 것은 벽에 걸린 낡은 가족사진만 덩그러니 있을 뿐이다.
하루에 두 번 버스가 다니는 남면, 재석은 출산이 임박한 임산부 일행과 동승하게 된다. 폭설이 내리는 언덕에서 버스는 고장이 나서 멈추고 출산의 순간이 임박하자 버스에 탄 사람들은 바빠진다. 한바탕 소동 끝에 새로운 생명이 탄생하는 경이로운 순간. 재석은 생의 마지막 힘을 소진하며 가쁜 숨을 내쉰다.
연출의도
오래 전 한 친구의 죽음에 충격을 받아 여행을 떠났던 때가 있다. 여행길에 잠시 들른 고향에서 우연히 송아지의 탄생과정을 보게 되었다. 그 순간, 난 죽은 친구를 떠올렸고, 생명이 ' 죽음과 탄생이 동시에 쉼 없이 이루어지는 이어달리기의 바통터치가 아닐까?' 하는 생각을 했다. 친구의 죽음과 갓 태어난 송아지의 울음소리는 계속 지워지지 않고 내 인생의 바랑에 담겨 있었는데, 이제야 마무리를 짓는다.
바랑이 하나 있는데 채워도 다 채워지지 않으며, 비워도 다 비워지지 않는다. - 법장 스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