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전쟁 때 사랑하던 사람과 헤어지고 월남한 일화는 만약 사랑하던 사람이 죽었다면 귀신이라도 불러 올 요량으로 무당이 되어 한 평생을 살았다.
그러나 세월은 매정하여 그 사람은 찾지도 못한 채, 일화는 죽음의 냄새를 맡을 만큼 늙어버렸다.
여느 때와 다름없어 보이는 어느 날 새벽, 자리에서 일어난 일화는 지금까지 그녀가 천도했던 모든 귀신들이 자신을 마중 나온 것을 알게된다.
연출의도
누구라도 한 번은 기필코 경험해야 하는 <죽음>을 사람들은 두려움과 공포로 해석해왔습니다. 죽은 자는 말이 없기에 죽는 순간의 느낌을 말해 줄 수는 없을 태지만 그런 해석의 근거는 죽는 사람이 아닌 남아있는 사람의 감정을 따라 정해진 것은 아닐까요? 알 수 없는 것에 대한 두려움이 죽음이라는 상징으로 변한 것 일 수도 있고요. 정말로 죽는다는 것에 두려움과 공포만이 존재한다면 세상 살기 싫을 것 같기도 합니다. 피할 순 없을 태니까요. 이 영화는 <죽는 것이 기쁠 수 있을까?>라는 생각으로부터 출발했습니다. 만약 기쁠 수 있다면 죽음을 기다리고 있는 사람에게 작은 안심을 줄 수도 있을 것 같기도 하고, 남아있는 사람들의 마음도 조금 가볍게 해줄 수 있지 않을까 싶기도 합니다. 어쩌면 살아서는 이루어 질 수 없는 것들이 죽어서는 이루어 질 수도 있겠다 싶은 생각까지 든 것은 아무도 모르는 곳이기에, 또 저승으로 간 사람이 단 한 명도 이승으로 되돌아오지 않는걸 보면 그곳이 좋은 곳이라 그런 것 같거든요. 영화는 남은 사람의 감정보다는 죽는 사람의 감정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또 이 세상에 너무 익숙해져 새로운 저 세상으로 떠나는 여행자에게 용기를 낼 수 있는 한마디가 되길 바라는 마음이기도 하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