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제강점기의 한국에서의 삶을 경험한 할머니의 체험에 바탕을 둔 옛날이야기.
할머니가 어렸을 때 할머니 나라는 물고기 나라의 지배를 받았는데, 지금 노인이신 할머니는 아직도 물고기 나랏말로 노래로 하시고, 구구셈도 외우신다. 손톱을 짐승이 먹으면 할머니 모습으로 변한다고 믿으시는 할머니는 항상 손톱을 화장실 변기에 버리신다. 어느 날 변기가 망가져서, 할머니는 강가로 손톱을 버리러 가다가 물고기 떼를 만난다.
연출의도
할머니 손에서 키워지는 동안 나는 70년대의 어머니 세대와는 또 다른 전쟁을 겪으신 할머니의 세대에 대한 호기심이 생겼다. 교과서, 혹은 방송 등의 언론 매체를 통해 배운 역사와는 달라 우리 할머니가 한 여성으로 겪으신 역사는 어떤 것일까? 하지만 우리 할머니는 그 역사에 대해 조금도 이야기해 주시지 않는다. 내가 할머니에게서 느끼는 전쟁의 경험은 겨우 이런 것이다. 두부를 사실 때 세는 일본말의 구구셈, 가끔 부르시는 알 수 없는 일본 노래, 내가 고모나 어머니를 통해 들은 할머니의 이야기는 이렇다.
청일 전쟁 때 할머니는 충청도에서 중국에 계시던 할아버지와 결혼을 하기 위해 만주로 가신다. 할머니가 20대일 때 할아버지를 폐병으로 잃으시고 자녀 다섯을 홀로 키우시다가, 6.25 때 큰아들을 잃으신다. 가끔 미국 유학생활이 힘들다고 느꼈던 나는 초등학교 교육밖에 받지 않으신 할머니가 혼자 아이들을 데리고 피난을 가고 교육을 시킨 상상을 하면 소름이 끼친다. 그 시대의 여성이 자신의 의지와는 관계없이 겪어야 했던 전쟁의 경험, 스스로조차 의식하지 못하는 문화적, 민족적 자아의 상실, 나는 이런 이야기들을 할머니를 가장 가깝게 경험한 손녀의 입장에서 전쟁을 추상적으로만 상상할 수 없는 시대에 태어난 또 다른 여성의 입장에서 표현하고 싶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