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매에 걸린 할머니는 언제나 방안에 가두어져 있다. 오랫동안 지속된 할머니의 치매는 손녀인 희주를 지치게 하고 있다. 할머니는 요즘 들어 이상한 행동을 한다. 희주의 방을 기웃거리며 진하게 화장을 하는가 하면, 내내 입던 옷을 벗어 내던지기도 한다. 오늘 할머니는 곱게 차려입고 나간다. 할머니를 찾아다니던 희주는 도심 한복판의 지하철 환풍구 위에서 할머니와 마주친다.
연출의도
시내 중심가에서 아무 것도 하지 않고 하루 종일 배회하는 할머니를 본 적이 있다. 거리는 언제나 활기차고 분주하고, 사람들은 저마다 제 갈 길을 간다. 군중 속의 그 할머니는 많은 것을 생각나게 했다. 축 처진 어깨, 주름진 얼굴, 구릿빛 피부.... 그러나 할머니 역시 젊은 시절이 있었다. 마릴린 먼로는 휘날리는 치마 속에 감춰진 각선미로 자신의 성적 매력을 발산했던 상징적인 인물이다. 할머니와 손녀는 일상에 지쳐있다. 어느 날, 그들은 거리에서 지하철 환풍구 위에 서 있던 마릴린 먼로와 똑같은 상황에 처한다. 할머니는 늙었고, 손녀는 젊다. 여기서 손녀는 할머니가 여자라는 생각을 한다. 단지 생각만 한다. 그곳엔 젊음을 잃고 초라해져 가는 늙은 여자가 있을 뿐이다. 이 영화는 할머니의 일상을 이해하는 것뿐만 아니라 그녀의 이미지에도 포커스를 맞추고 있다. 따라서 시점 쇼트와 이미지의 연결은 매우 주관적이다. 주관적인 이미지들을 객관적인 관점으로 보기 위해 오버랩을 계속 사용했다.
영화의 끝에서, 손녀는 할머니의 머리에 활짝 핀 꽃을 꽂아줌으로써 그녀를 이해하려 노력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