꾸깃꾸깃 주름 많은 천이 걷히자, 회색 빛의 도시가 보인다.
도시의 중심으로 갔을 때서야 비로소 사람 사는 소리가 들리지만 아무도 보이지 않는다.
수많은 건물을 지나니 저 멀리 안개너머로 큰 문 하나가 서있다.
문에 어떠한 장식도 없는 것이 표정 없는 사람 같다.
그 주변을 지나가던 어떤 물체(해파리)가 그것에 관심을 갖는다.
둘러 보다 문을 열어보지만 그곳엔 문 너머 문, 계속해서 또 다른 문이 나타난다.
물체는 화가 난 듯 문에게 화풀이를 하다 상처를 내고 만다.
이내 미안했는지 도망가버리는 물체를 뒤로하고 찰방찰방 물소리가 들린다.
물은 자연스레 문을 열고 들어간다.
그 곳엔 작은 물고기 한 마리가 있다.
물고기는 물을 만나자 비치는 자신의 모습을 보며 신기해한다.
둘은 곧 친해져 춤을 추든 하늘로 날아 오른다.
날아오를수록 물고기는 더욱 화려하고 아름다운 모습으로 변하지만 물은 기력을 다해 더 이상 올라갈 수 없다.
한 두 방울씩 떨어지는 물방울은 마치 물고기의 손을 잡으려는 듯 하다.
물은 언제나 곁에 있을 것 이라 말한다.
하지만 물고기는 자신의 빛나는 모습에 심취하였다.
물이 없는 것을 눈치채지 못하고 계속해서 위를 향해 비상할 뿐이다.
그곳은 마치 우주와 같이 공허하고 신비스럽다.
연출의도
이 작품은 초현실주의 사상과 기법을 통해 나의 20대 초반의 감성과 관점으로 바라본 사회를 담았다.
작품의 마지막에 등장하는 물고기가 바로 내적 자아를 뜻하는데, 경상도 촌 구석에서 올라온 소녀가 세상물정 모르고 살다가 어른이 되어가면서 느끼는 현실의 압박과 치열하게 살아가는 차가운 도시 사람들에게서 받은 상처로 인해 쉽사리 마음의 문을 열지 못하고 있다. 그 가운데 물고기가 믿고 의지하는 것이 ‘물’이다. 물고기는 물로 인해 생기를 얻고 아름답게 변화하지만 결국엔 물고기도 자신의 환상적이고도 외로워 보이는 이상향을 향해 나아가게 되는데 이는 사실 열린 결말이다. 나의 이상적인 20대 중반의 삶을 예상해 본 것일 뿐이니 말이다. 이렇듯 오고 가는 이기적인 사회에 사는 사람들의 심리 변화와 욕망을 그리고 싶었다.
사회에 첫걸음을 내딛고선 나는 어떤 모습일까?
나도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상처를 주는 이기적인 사람이 되진 않을까?
천: 나의 이야기
소리만 들릴 뿐 사람 없는 도시: 나에게 중요하지 않은 도시, 무관심한 도시에 반하는 마음
문: 사람들이 보는 나의 외관, 외부로부터의 차단을 원하는 나의 심리
해파리: 아름다운 외관을 가졌지만 목적(독)을 가지고 접근하는 사람들
물고기: 내적 자아
물: 소중한 사람들
우주: 이상향, 나의 미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