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0 곱하기 500 픽셀 크기의 네모들이 트래킹을 시작한다: 한국과 카자흐스탄 사이를 달리는 기차의 이미지-임의의 데이터들은 분석의 대상이 되고, 네모들은 동작 이미지 속에서 의미를 생성 및 출력한다. 케이팝, 유목민, 고려인, 멀미, 우주개척. 논리와 내러티브는 부재하다. 데이터 조각들과 그 관계들의 의미는 그것들의 병치(juxtapostion)와 조립(assembly)에서 드러난다. 우리는 그것에 아주 익숙하다.
연출의도
우리는 우리의 의지와 상관없이 기차에 태워졌다. 웹 브라우저, 유튜브, SNS라는 기차. 그 기차는 알고리즘이라는 엔진을 타고 길고 끝이 보이지 않는 네트워크 위를 멈추지 않고 이동한다. 그 바깥에 보이는 풍경은 끊임없이 펼쳐지는 임의의 데이터들로 구성된 초원이다.
초원 자체로는 아무런 의미가 없다. 우리는 객차 안에서 바라본 풍경에서 어떤 연결을 만들어낼 뿐이다. 그것으로 감정을 느낀다. 때로는 기존의 신화, 전통적인 내러티브의 형태에서 완전히 멀어진다. 맥락과 역사가 삭제되기도 한다. 그것은 한국일 수도 카자흐스탄일 수도 있다. 유목민일 수도 케이팝일 수도 고려 사람일 수도 있다. 밈이라는 것이 아무런 관련이 없는 다중의 이미지들 사이에서 어떤 감상을 뽑아내듯, 우리는 하이퍼링크를 타고 이 정보에서 저 정보로 이동하며 의미를 추출하고 세상을 이해한다. 플라스틱 칼로 찰흙을 자르는 동영상을 보며 편안함을 느낀다. 알아들을 수 없는 언어로 이루어진 노래를 30초 혹은 1분 동안 듣는다. 우리를 구성할 수 있는 단단한 서사는 없다. 회화작가 프랭크 스텔라가 말했듯, 이 기차 안에서는,' 당신이 보는 것이 당신이 보는 것이다.’
생성형 Al는 어떻게든 정보를 뱉어낸다. 말이 되는 것만 같은 글들, 이상하지만 설득력 있는 그림들. 그것은 오류가 아니다. 오히려 그러한 임의성과 무작위성은 우리가 이미 이 세계를 살아가며 매일 피부로 느끼고 있는 감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