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이야기는 약 100년 전, 식민지 시기의 사진 한 장에서 시작된다. 이 사진을 통해 영등포에서 오래전 수많은 여성이 공장에서 일했으며, 1938년 총동원법 이후로, 전쟁을 위해 여성들이 강제로 끌려와서 공장에서 일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하지만 지금의 영등포에서는 그들의 흔적을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다.
연출의도
100년 전에 영등포구 당산동 피혁 공장에서 일하던 수많은 여성 노동자들의 사진을 보게 되었다. 사진 속 얼굴들을 보며 영등포에 그 많던 여성들은 다 어디로 간 것인지, 기록되지 못한 사람들이 어떤 삶을 살았는지 그녀들의 이야기를 찾아보고 싶어졌다. 영등포의 풍경은 어렸을 때부터 늘 기이하다는 인상을 받았다. 지나다니는 골목마다 서로 다른 모습을 한 영등포의 얼굴은 가지각색이었다. 시장, 공장, 백화점, 먹자골목, 여인숙, 경마장, 노숙인 쉼터, 성매매촌까지 이질적인 성격의 공간들이 영등포에는 혼재되어 있었다. 서울에서도 가장 혼란스럽고, 맥락이 없는 공간이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영등포는 나에게 불균질한 공간이었다.
2010년대에 지어진 타임스퀘어 백화점의 길 건너편에는 1920년대에 지어진 오래된 공장이 숨어있다. 일제강점기 시대에 사라진 여공들의 이야기가 구전처럼 들려왔다. 일제강점기 시절 강제동원된 노무자에 대한 구술집에는 당시 남성 공장노무자들의 구술을 통해서만 여성들의 이야기를 발견할 수 있었다. 1938년 국가총동원법 이전에는 공장에 자신의 뜻으로 취업해서 일하며 투쟁하는 여공들이 있었지만, 총동원법 이후에는 모두 강제동원 되어서 노동의 권리도 남아있지 않고, 의무만 남아있는 노무자가 되었다. 일본제국의 군인들은 영등포에 말을 타고 들어와 많은 방직공장들을 세웠고 그곳으로 전국의 여성들을 모았다. 여성들은 전쟁에 필요한 물자들을 보급하기 위해 공장에서 강제적인 노동을 해야 했고 당시 사회가 요구하는 모순적이고 불평등한 여성상을 강요받으며 이중의 고통을 받아야 했다. 일본인들은 영등포를 가로지르고 통제하며 공간을 점유하고 감시했다. 영등포의 현재 공간의 모습은 제국의 착취에서 시작되었으며, 여전히 자본과 권력의 통제 안에서 빚어진 뒤틀린 모습으로 남아있다. 제국주의 권력과 자본권력은 기억되어야 하는 것들까지도 모두 휩쓸어 갔고 영등포에 모였던 그 많은 여공들과 강제동원된 여성노무자들의 흔적들을 어디서도 발견할 수 없게 되었다.
영등포의 현재의 공간을 따라가다 보면 누락된 여성들(여공들과 여성노무자들)의 시간을 발견할 수 있지 않을까. 맥락을 알 수 없이 단절된 공간들 사이의 틈은 어쩌면 사라진 여성들의 소실된 이야기일지도 모른다. 영등포에서 시작된 여성들의 기록되지 못한 이야기들을 수집하게 된다면 영등포라는 공간의 단절을 이해하고 사라진 여성들의 이야기를 다시금 시작할 수 있을 것이다. 여성들의 삶을 여성들의 언어와 기억으로 기록하고자 한다. 영등포라는 공간에서 강제동원된 여성들의 삶과 시간을 기억하는 사람들과 함께 영화로 이야기 하고자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