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주 대인시장에서 행상을 하는 하문순과 평화반점의 박복자는 518항쟁을 지켜보았다. 삶의 현장에서 보았던 518은 아픔과 함께 자부심으로 남아있다. 캄보디아의 소수부족으로 살아가는 슬리와 그의 어머니 네이떽은 고단한 노동을 감내하며 살아가지만, 언제까지 이 삶을 지켜낼 수 있을지 불안하기만하다. 점령하에서도 삶을 멈추지 않았던 팔레스타인의 여성들-난민촌에서 노인이 된 노우라와 파트마는 자식들의 죽음을 지켜보았다. 언제까지 이 상황이 이어질까? 그들은 다시 고향으로 돌아갈 수 있을까? 누구도 희망을 말하지 못한다. 그리고 보스니아에서 살아가는 집시여성, 그들은 종교와 민족으로 구분하여 서로를 적으로 삼았을 때 어느 곳에도 속하지 못하고 공공의 적으로 취급되었다. 오랜시간 인종차별의 대상이었던 집시 여성들의 불안한 삶을 라미자와 아멜라는 담담하게 이야기 한다. 한편 감독의 두 아이는 어린아이에서 20대 청년이 되었다. 그들과 상구네는 어딘가 닮은듯 흔들리며 가고 있다.
Review 어디에서나 부는 바람. 금세 그친대도 언제 자리를 떠났느냐는 듯 다시 찾아와 세차게 불어댄다. 바람이 지나간 자리에는 흔적이 남기에, 감독은 바람과도 같은 분쟁의 흔적에 뭉그러진 사람을 조명한다. 총과 칼이 지나간 자리에도 살아남은 사람들과 변해버린 집, 바스러졌지만 전승되는 문화의 한 자락이 담아진다. 계속된 것은 분쟁 피해자의 삶뿐만이 아니다. 롯데월드보다 가자지구가 친숙했던 감독의 가족 또한 바람을 찾아 떠나는 여정을 계속해나간다. 영화는 반복적인 분쟁의 단말마적 포착이 아닌 분쟁 이후의 삶의 느긋한 교차를 통해 입체적으로 갈등 상황을 담아낸다. 그래도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과, 그래도 카메라를 들어야 하는 가족이 맞물리며 뉴스가 조명하지 못했던 이후(post)의 순간을 그려낸다.
*관객기자단[인디즈]_이수영
연출의도
민중의 세계사 작업은 항상 난관을 넘어야 하는 과정이었다. 지역도 인물도 기간도 정하기 어려웠고 언어도 통하지 않는 일이기에 늘 초보자가 겪는 일들을 겪어야 했다. 그렇게 다시 네번째 작업을 시작했다. 내전의 아픔을 겪은 보스니아 집시에 관한 작업이었다. 1차 촬영을 준비하던 중 코로나19로 세상은 멈췄고, 봉쇄의 시간은 기약없이 길어지면서 작업도 멈췄다. 멈추었을 때 작품마다 주인공의 곁을 지켜왔던 여성들의 삶이 보였다. 그들은 가장 낮은 자리에서 흔들리면서도 강인하게 자신의 삶을 지켜왔다. 각기 다른 환경과 문화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서로 닮아 있었다. 국경,민족,종교, 언어가 장벽이 될 수 없는 것들-'그것'을 함께 나누고, 또 다른 '그것'을 관객들과 함께 찾고 싶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