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살에 할머니 ‘춘자’로부터 신부수업으로 뜨개질을 배운 한나. 뜨개질을 배운지 15년이 지나 어린이에서 어른이 된 한나는 자신의 방을 뜨개질의 세계로 만든다. 하지만 여전히 남들에게 한나의 뜨개질은 그저 그런 취미일 뿐이다. 한나는 여성으로 살아가면서 느끼는 혼란스러움에 대해 생각한다.
과거의 기억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한나는 코바늘 뜨개질의 최고봉, ‘만다라 매드니스’를 제작하면서 과거의 경험과 감정을 만다라에 담기로 한다. 한나는 가장 사소하고 여성스러운 뜨개질로 가장 거대한 반란을 꿈꾼다.
그렇게 밤낮으로 실을 얽고, 실을 풀고를 반복하던 한나는 마침내 만다라를 완성한다. 한나는 완성된 만다라를 전시하고 그 앞에서 드랙퀸과 드랙킹이 되어본다. 할머니의 뜨개질은 무엇이었을까 상상하며 노래를 부르고 춤을 춘다. 그 노래의 끝은 이렇다. “춘자 can be anyone."
Review 인도 승려들이 정신 수양을 위해 주로 사용한다는 만다라는 아주 고운 모래를 정교하게 놓아 완성되는 예술이다. 만다라를 제작하는 데 있어 가장 중요한 과정은 다름 아닌 파괴다. 몇 날 며칠 숨조차 허투루 쉬지 않으며 그려낸 만다라라 할지라도, 마지막에 이들을 흩트려놓아 결국 ‘무’로 돌아가야만 불변하는 것은 없다는 불교의 진리와 맞닿을 수 있기 때문이다. 영화 <퀸의 뜨개질>은 이와 같은 만다라의 성질을 알레고리로 활용해 영리하게 진행한다. 여성의 전유물이라 여겨온 뜨개질이라는 행위에서도 ‘직조’의 성질을 발라낸다. 여성성과 남성성을 뜨개질해 내고, 이 과정에 세대를 초월한 여성들의 목소리를 얹어낸다. 허나, 만다라 매드니스에서 가장 중요한 과정 또한 다름 아닌 파괴다. 직조한 젠더와 남근을 해체했을 때, 남은 것은 결국 ‘무’ 일뿐이다.
*관객기자단[인디즈]_이수영
연출의도
뜨개질을 하면서 나는 영화를 만든다. 과거의 기억의 조각들이 가느다란 실이고, 이들이 엮여서 뜨개물이 되어 영화가 된다. 정교하게 완성된 뜨개물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촘촘하게 지나간 시간의 흐름이 보인다. 나는 그러한 지나간 시간의 코들을 수집하고 다시 풀고 얽고를 반복해서 이야기를 만들고자 한다. 미래에도 나는 혼란스러울 것이고, 그 때마다 뜨개질을 하면서 그저 그 시간이 지나가기를 기다릴 것이다. 나는 사회가 정상이라는 간주하는 것에서 지속적으로 이탈할 것이다. 또한 뜨개질로서 상징되는 ‘여성스러운 것’이라는 폄하의 시선을 역이용하여 대범한 반란을 꾀하려고 한다. 한국 사회 속 자신의 정체성을 경계에 두고 질문해야 하는 사람들에게 이 영화를 통해 젠더적 혼란 그 자체에 대한 긍정과 지지의 메시지를 전하며 경계에 선 모든 사람이 자신의 가능성에 한계를 두지 않는 시대가 오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