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재까지 남과 북은 정치 공작원들을 상호 침투시키고 있으며,
고향으로 돌아가지 못한 정치 공작원들은 1만 3천여명이 넘는다.
2000년, 63명의 간첩 출신 장기수가 고향인 북으로 송환되어 돌아갔으나,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전향을 했다는 이유로
전향 장기수들은 명단에서 제외되었다.
2001년, 이들은 '폭력에 의한 전향무효선언'을 하고 '2차 송환' 운동을 전개한다.
대통령이 다섯 번 바뀌는 20년 격변의 한반도 풍랑 속에서
그들은 여전히 희망과 절망의 롤러코스터 위에 있다.
1992년부터 그들의 곁을 지킨 김동원 감독의 시선으로 전개되는 휴먼 스토리
Review 비전향 장기수의 이야기들에 오래 전부터 집중해온 <송환>의 김동원 감독은 그들의 삶을 아주 가까이서 들여다본다. 영화가 흐르면 흐를수록 선명해지는 화질은 영화가 이들을 담아낸 세월만큼이나 영화 속 인물들의 세월 또한 함께 흘렀음을 의미한다. 통일이라는 거창하게 들릴 수 있는 그들의 바람은 사실 가족을 만나고 싶다는 그 막연하고도 당연한 마음이며 자신의 시간이 멈춘 그 때로 돌아가고 싶은, 결국 우리 모두의 시간과 존재를 제자리에 돌려놓고 싶은 간절하고도 계속되는 염원이다.
*관객기자단[인디즈]_김지윤
연출의도
김영식 선생에겐 내가 도무지 흉내 낼 수 없는 몇 덕목이 있다.
김 선생은 무엇보다 부지런하다. 잠시도 몸을 쉬지 못한다. 새벽 4시경이면 벌써 뭔가를 하고 계신다. 집에 계실 땐 텃밭에 나와 꽃과 나무들을 돌보신다. 그리고 그건 그의 서울 생활에서 가장 큰 낙이다. 6시경이면 식사, 청소 등 집안일을 깔끔히 끝내 놓는다. 문제는 나와 너무 수면 리듬이 다르다는 점이고, 그래서 그 ‘부지런함’은 내 카메라에 담기지 못했다. 정동진 영화제에서 밤새 술을 먹고 새벽녘에 여관으로 돌아오면 선생은 이미 산책을 끝내고 반갑다는 듯 이런저런 말을 거신다. 몇 마디 대화 끝에 내가 방으로 도망가면 김 선생은 ‘어휴 심심해. 심심해.’ 한숨을 쉬신다. 특히 산골 출신이라 나물 캐기에 아주 선수다. 지리산에 놀러 갔을 때 선생은 새벽녘 혼자 등산을 나가 그 동네 사람들도 모르는 나물들을 한 아름 따 와 동네 사람들에게 나누어 주시기도 했다.
김영식 선생은 동정심이 많다. 길거리를 가다 구걸하는 사람들을 보면 그냥 지나치지 못하신다. 김 선생 지갑엔 천 원짜리 지폐가 항상 넉넉히 준비되어 있고 그냥 적선만 하는 게 아니라 밥은 먹었는지, 아픈 덴 없는지 잠은 어디서 자는지를 물어보며 몇 마디 대화를 나누신다. (이런 장면들도 찍지 못했는데 신기한 건 그런 일은 언제나 카메라 준비가 안 되어 있을 때 일어나고 준비를 하고 있으면 절대 일어나지 않는다는 점이다.)
내가 무엇보다 좋아하는 모습은 그의 ‘귀여움’(?)이다. 그건 아주 ‘토속적인 귀여움’이고 그의 꾸밈없는 성격과 한국적인 얼굴에서 나오는 것 같은데, 다행히 찍기 쉽고 많이 찍을 수 있었다. <송환>에서 감옥에서 고문 받던 이야기를 하면서 “구두 만드는 사람들에게 구두 코를 좀 말랑말랑하게 만들어 달라고 부탁하고 싶다”, “이 세상 엄마들에게 ‘나이팅게일 같은 착한 사람들을 낳아 달라’고 부탁하고 싶다”며 웃픈 표정을 지으실 장면이나 <2차 송환>에서 “촬영할 때 진짜로 영화가 되는가 하는걸 알았더라면 진짜로 멋지게 했을 텐데 전혀 몰랐거든” 하며 활짝 웃으시는 장면 등은 지루한 편집을 이겨 나가게 하던, 언제 보아도 그의 ‘귀여움’이다. 물론 때론 느닷없이 심술을 부리실 때도 있고 그의 말처럼 ‘한없이 목청이 올라갈 때’도 있다. 또 지나치게 말씀이 길어져 조마조마 할 때도 있다. 하지만 내겐 그마저 귀엽게 보이니 어쩜 나와 김 선생은 전생에 연인 사이였는지도 모르겠다.
그런 그가 올봄 아흔을 넘기면서 눈에 띄게 건강이 나빠지시는 것 같아 주변의 걱정이 크다. 여름에 정동진도 함께 가지 못했다. 어떻게 하든 나와 그는 아직 끝나지 않은 ‘2차 송환’을 완성시켜 나갈 것이다.
[2차 송환](2022)
[내 친구 정일우](2017)
[강정 인터뷰 프로젝트](2012)
[이상한 나라의 데자뷰](2009)
[끝나지 않은 전쟁](2008)
[종로, 겨울](2005)
[송환](2003)
[철권 가족](2001)
[한사람](2001)
[또 하나의 세상, 행당동 사람들2](1999)
[명성, 그 6일의 기록](1997)
[길 3부작: 길 다시 이어야 한다](1995)
[하나가 되는 것은 더욱 커지는 일이다](1995)
[미디어 숲 속의 사람들](1995)
[행당동 사람들](1994)
[장애예방 이렇게 합시다](1993)
[세계의 가난한 사람들](1993)
[하느님 보시니 참 좋았다](1991)
[벼랑에 선 도시빈민](1990)
[엄마 아빠 할 수 있어](1989)
[상계동 올림픽](1988)
[야보고의 5월](198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