먼지가 수북하게 쌓인 일기장에는 언젠가 내가 영웅이라 여겼던 이들이 살고 있습니다. 너와 나, 우리를 위해 기꺼이 망신당하고, 과감하게 악당을 무찔러 버리고, 불의를 쉽게 지나치지 않았던 이들은 지금쯤 어디에서 무엇을 하고 있을까요? 독립영화 라이브러리 열두 번째 큐레이션 ‘내 일기장 속 영웅들’에서는 나에게만큼은 심각하고 곤란했던 일들을 대처할 수 있도록 해 줬던 이들을 호명하는 작품들을 만나 볼 수 있습니다.
대입 비리 문제와 액션에 대한 열정이 뒤섞여 사건 해결을 향해 나아가는 이진호 감독의 <액션히어로>, 내가 나의 영웅이 되어 가능성을 발견하고 자신을 지킬 수 있게 되기까지의 여정을 담은 <울렁울렁>, 사회적으로 금기시되는 일을 치열하고 재치 있게 다루는 법을 알려 주는 백시원 감독의 <젖꼭지 3차대전>, 제아무리 월등한 능력의 히어로라 해도 연대하는 것 없이는 세상을 지킬 수 없다 말하는 최우진 감독의 <크리스마스가 따뜻한 이유는 말이죠,>, 다르다는 것이 만든 오해들을 ‘사랑과 정의의 이름으로’ 용서하지 않는 목소리를 담은 <한나 때문에>.
이 작품들에선 한껏 움츠러들었던 몸에서 힘을 빼고 보다 유연한 방식으로 세상에 맞서는 인물들이 보입니다. 인생은 결국 혼자라는 말이 진리로 통하는 시기에도 손을 잡고, 힘을 모아 내일에 대한 냉소를 걷어내었던 나만의 영웅들. 이번 다섯 영화와 함께 영웅들의 이름을 되새기는 충만함을 느끼는 시간이 되셨으면 합니다.
*관객기자단[인디즈]_박이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