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파인더④] 눈 밝은 파트너를 찾아서 - <부재의 기억> 감병석 PD 인터뷰 (with 강사라 PD) | 2021.06.28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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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파인더-4 눈 밝은 파트너를 찾아서 - <부재의 기억> 감병석 PD 인터뷰 (with 강사라 PD) ○ 정리 : 양주연
<부재의 기억>, 필드 오브 비전과의 만남 양주연: 필드 오브 비전과 함께하게 된 계기가 궁금하다. 감병석: 필드 오브 비전으로부터 2016년 12월경 처음 이승준 감독 통해서 연락이 왔다. 잘 모르는 상태에서 홈페이지를 살펴보니 좋은 감독들 작품도 많고 젊은 감독들 작품도 많아서 같이 해도 괜찮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당시 개인적으로 세월호에 대한 다른 결의 다큐멘터리가 나왔으면 좋겠다는 마음이 있었다. 유가족들의 고통받는 상황을 전면에 내세우는 다큐멘터리가 아니라 다른 면을 보여주고 싶었다. 필드 오브 비전 기획과 타이밍이 잘 맞았다. 강사라: 필드 오브 비전의 제안은 해외 관객을 타깃으로 하고 있다. 그런 면에서 고민되는 점은 없었나? 감병석: 이 이야기를 어떻게 보편적으로 확장할 것인가의 고민이 있었다. 세월호가 한국적인 소재이지만 이걸 이야기하는 목소리나 시선에서 보편성을 확보할 수 있으니까. 그때 고민했던 키워드가 ‘고통’이었다. 삶이 수치로 대체되는 상황에서 인간의 고통에 대한 근원적인 자세가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고통’을 잘 보여줄 수 있을 때 세월호 이야기도 오래 기억될 수 있는 거니깐. 양주연: PD로서 가장 고민되었던 지점은 무엇이었나? 감병석: PD로서는 연출자의 장점이 무엇인가를 함께 생각하려고 노력했다. <부재의 기억>을 연출한 이승준 감독과는 <달팽이의 별>(2012), <크로싱 비욘드>(2018), <그림자꽃>(2019) 작업들을 오랜 시간 함께 해왔다. 이승준 감독은 인간의 심리를 섬세하게 잘 그려내고 감성적인 터치가 강한 감독이다. PD로서 이감독이 이 이야기를 잘할 거라는 확신이 있었다. 양주연: 필드 오브 비전 측의 피드백도 궁금하다. 감병석: 좋아했다. 우리가 ‘고통’ 키워드에 대해 먼저 이야기하면서 세월호 민간 잠수사들 이야기를 함께 했다. 당시 한국 사회에서 그분들에 관한 관심이 금방 사라졌고 우리는 여기에 집중하고 싶다고 말했더니 첫 회의에서 좋다고 그랬다. 지나고 생각해보면 그분들이 작품을 보는 눈이 좋았다는 생각이 든다. 처음에는 그쪽에서 오스카를 낼 거라고 이야기해서 장난치냐고 웃었다. 당시 오스카 단편 규정이 크레딧 포함 30분 이내였다. 그 길이에 무조건 맞춰야 한다고 해서 그게 좀 힘들긴 했다. 올해 단편 다큐멘터리 부문 오스카 본상 후보 중에도 필드 오브 비전에서 제작한 다큐멘터리가 있다. 홍콩 항쟁에 대해 다룬 <두 낫 스플릿(Do Not Split)>(2019) 이란 다큐멘터리이다. 그런 작품을 보는 눈은 부럽다. 양주연: 그런 필드 오브 비전의 눈은 편집과정에도 반영이 되었나? 감병석: 그렇다. 편집과정에서 ‘고통’이란 키워드가 ‘부재’로 확장되었다. 한 시간 조금 넘는 러프 컷을 그쪽으로 일단 보내고 그 뒤 스카이프로 회의하고. 이 과정을 반복하면서 서로 지치기도 했다. 같은 데서 맴도니까. 줄이는 게 쉽지 않았다. 필드 오브 비전 쪽에서 미국 다큐멘터리감독을 편집자로 섭외해주었다. 그 편집자의 편집을 보면서 서로 주고받으면서 같이 줄여나갔다. 가장 기억 남는 것은 부모에 대한 씬. 우리는 그들의 눈물과 비명을 들어봐야 한다고 생각했는데 그 편집자는 이미 너무 강하기 때문에 그걸 다 담는 것보다는 사람들이 그걸 고민할 수 있는 공간을 열어두어야 한다고 하더라. 고통받는 사람들을 얼마만큼 보여줄 것인지에 대해 협의를 하는 과정에서 많이 배웠다. 공동제작을 하면 그게 장점인 것 같다. 좋은 파트너를 만날 수 있다는 것. 강사라: 그전에 했던 공동제작 방식과 <부재의 기억>이 특별히 다른 점이 있다면? 감병석: <부재의 기억>은 필드 오브 비전이 제작사이면서 동시에 배급사이기도 하다. 기존의 필드 오브 비전이 가진 네트워크를 활용해서 영화제 출품도 바로바로 진행하고 해외 방송사에도 직접 배급한다. 이 점이 특히 좋았다. 제작사니까 다큐멘터리의 내용도 잘 이해하고 있고 배급도 함께해주니까 효율적이고. 배급사를 잘 고르는 건 정말 중요하다. ‘국제 공동제작’이라는 이름의 커뮤니케이션 양주연: 어떤 프로젝트의 경우에 국제 공동제작을 추천하는지? 감병석: 국제 공동제작을 하려면 기본적으로 크리에이티브 다큐멘터리 형태가 되어야 한다. 소재가 무엇이든 국제 공동제작은 시도해볼 수 있다. 이야기의 의미나 가치를 확장할 수 있는 방향성이 있다면 뭐든 시도해볼 수 있다고 생각한다. 양주연: 크리에이티브 다큐멘터리에 대해서 좀 더 설명해준다면? 감병석: 영상예술로서 다큐멘터리에 대한 고민이 많아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크리에이티브 다큐멘터리는 똑같은 내용이라 하더라도 어떻게 다르게 표현할 것인지에 대한 고민이 담긴 결과물이다. 다큐멘터리에서 재현을 어떻게 할 것인지의 고민도 중요하다. 이때 비주얼과 편집이 중요해지고 음향, 음악도 중요해진다. 중요한 건 다큐멘터리는 글이나 음악, 춤 등과는 달라야 한다는 것이다. 이런 영역들이 담지 못하는 부분이 뭘까 고민한다. 언어 이상의 언어. 언어를 뛰어넘는 언어를 보여주는 것이 크리에이티브 다큐멘터리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연출자의 해석이 중요하다. 진실을 드러내는 것이 아니라 연출자의 해석이 필요하다. 그게 크리에이터의 해석이고. 강사라: 해외 작업자와 함께 일하는 것을 고려할 때 아무래도 언어적 장벽 때문에 고민을 많이 하게 되는 경우도 있는 것 같다. 하지만 결국엔 언어의 문제라기보다는 커뮤니케이션을 하는 것이 중요한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국제 공동제작을 준비할 때 언어 외적으로 필요한 부분이 있다면?
감병석: 다큐멘터리는 시에 가깝다고 생각한다. 다큐멘터리를 잘하고 싶으면 스토리텔링 책을 공부하는 것보다는 시를 읽고 그림을 보는 것이 더 도움 된다. 시가 언어를 생산적으로 파괴하듯이 다큐멘터리 편집을 하다 보면 분명히 그런 순간이 온다. 사건을 잘 전달하는 것이 다큐멘터리의 목적이 아니라, 이 이야기를 통해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가 무엇인지를 잘 전달하는 것이 중요하다. 이야기 자체를 전달하는 것이 아니라 감독이 하고 싶은 이야기가 뭔지. 결국엔 왜 감독이 이러한 이야기를 선택했는지에 대한 질문이 중요해진다. 양주연: 2019년 강사라 PD와 제작 중인 장편 다큐멘터리 <양양> 프로젝트로 함께 닥라이프치히 코 프로마켓(DOK Leipzig Co-pro market)에 갔었다. 여러 해외 작업자들을 만날 수 있었는데 그 네트워크를 어떻게 유지할 수 있을지도 고민이 되더라. 감병석: 네트워크 유지를 위해서는 피칭 포럼이나 랩 등을 계속 나갈 수밖에 없다. 많이 보고 참여하는 수밖에. 피칭포럼은 제작지원금을 받느냐 안 받느냐의 문제가 아니라 피칭을 하는 과정에서 나오는 질문들을 통해 뭘 배울 수 있느냐가 중요하다. 또 그렇게 프로젝트를 알리고 개발하는 거다. EBS 국제다큐멘터리영화제나 DMZ 국제다큐멘터리영화제에서 하는 인더스트리 행사의 문을 계속 두드려야 하는 이유이다. 이외에도 영화를 많이 볼 것을 정말로 추천한다. 영화를 보면 엄청 공부가 많이 된다. 창작자는 ‘룩 앳(look at)’과 ‘룩 인투(look into)’를 구분해야 한다. 카메라가 찍는 건 ‘룩 앳(look at)’, 창작자가 해석해서 방향을 설정하는 건 ‘룩 인투(look into)’. 그 두 개가 다 있어야 한다. 강사라: 함께 일하는 해외 작업자들과의 관계를 맺는데 있어 감병석 PD만의 노하우가 있다면? 감병석: 특별한 건 없고 메일이나 줌, 왓츠앱을 이용한다. 친한 사람들은 그냥 왓츠앱으로 점심때 전화해서 수다 떨고. 해외 작업자들에게 업데이트된 트레일러 보낼 때도 덜컥 보내면 안 된다. 먼저 봐줄 수 있는지 의사를 묻고 그쪽에서 오케이를 하면 그때 보내야 한다. 상호 간에 준비할 수 있는 시간이 필요하다. 언어 자체는 별로 문제가 안 된다. 중요한 건 키워드. 제일 좋은 건 연출자가 키워드를 가지고 있으면 영어가 좀 더 나은 PD가 그 키워드를 잘 전달하는 게 좋다. 크리에이티브 다큐멘터리의 기획과 배급과정 양주연: 다큐멘터리 제작 과정은 크게 기획, 제작, 후반 작업 단계가 있다. 이 중 기획 단계에서 창작자들이 염두에 둬야 할 점이 있다면? 감병석: 기획 단계에서는 의미를 정의 내리는 단계가 아니다. 의미를 찾는 게 더 중요하다. 기획할 때 좀 더 넓게 다가갈 수 있는 나만의 의문이 꼭 필요하다. 남들에게도 있는 의문이어도 괜찮다. 근데 중요한 건 이 의문이 나한테 얼마나 중요한지를 보여줘야 한다. 생각보다 해외에서 공동 파트너를 구할 때나 피칭포럼에서 심사할 때 무게를 크게 두는 것이 바로 열정이다. 또 흔히 할 수 있는 실수 중의 하나가 어쩔 수 없이 한글로 먼저 쓰고 그다음 영어로 번역을 하는데, 이 과정에서 차이가 크게 생긴다. 영어는 두괄식 아님 미괄식이다. 기획안 쓸 때 애매한 거나 추상적인 표현을 사용하면 안 된다. 기획안을 쓸 때 또 중요한 것 중의 하나가 예산이다. 예산이 스태프들에게 공정하게 책정되어있는지도 봐야 한다. 지금 돈을 갖고 시작하지는 않지만 향후 스태프들에게 얼마를 줄 수 있는지를 고민하고 그걸 목표로 프로덕션이 움직여야 한다. 제작에 있어서 평등하고 존중받을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 게 정말 필요하다. 양주연: 해외 배급사를 선정할 땐 어떤 기준으로 하나? 감병석: 해외 배급사를 고를 때 우선적으로는 내 작품을 좋아해 주는 곳을 선택해야 한다. 그럼 유명한 해외 배급사를 가면 좋으냐, 무조건 좋은 건 아니다. 그럴 경우 배급사 카탈로그에 작품들이 너무 많으니까 내 작품은 그중에서 중하위순위가 될 수도 있다. 때에 따라서는 해외 배급사가 공동제작 파트너가 될 수도 있다. 이때 이런 제안을 어떻게 잘 활용하고 전략을 만드는지가 중요하다. 배급사를 처음부터 잡기보다는 좋은 관계를 유지하면서 여러 협의를 해나가는 게 중요하다. 강사라: 어떻게 처음 해외 배급사 컨택을 시작하는 게 좋나? 감병석: 우선은 이메일로 컨택할 수밖에 없다. 작품이 다 만들어지고 나서 연락하는 게 아니라 러프 컷이 나올 때쯤 배급사 컨택을 시작해야 한다. 배급사도 신선한 눈을 갖고 있고 경험이 많기 때문에 먼저 연락해서 함께 배급전략을 짤 수도 있다. 영화가 다 만들어지고 컨택하면 배급사에서 함께 할 여지가 없다. 팬더믹 속에도 좋은 질문은 계속되어야 한다 양주연: 팬더믹 상황에서 체감되는 변화가 있는지? 감병석: 일단 해외에서 공동프로덕션을 찾는 경우가 많아졌다. 실제로 해외에서 움직이질 못하니까 로컬 프로듀서를 찾는 경우가 많고. 또 생각보다 온라인에 적응한 것 같다. 피칭도 온라인으로 진행하는 경우가 많고. 중요한 건 크리에이티브 다큐멘터리가 많이 늘었다. 새로운 형식의 크리에이티브한 터치가 점점 더 중요해지고 있다. 새로운 접근방식과 시각적 전략들이 많이 시도되고 있다. 경향상 두드러지는 점은 LGBT나 여성 이슈가 크게 늘었다는 것. 여성 감독들도 많이 등장하고 있다. 특히 동남아에서도 여성 감독들이 많이 등장하고 있다. 그만큼 그 사회가 오픈되었다기보다는 반대로 갈등이 막다른 골목까지 갔기 때문에 튀어나오고 있는 것이 아닌가 싶다. 양주연: OTT는 어떠한가? 감병석: OTT는 좋으면서도 무섭다. 독립다큐멘터리 지원은 상당히 나쁘진 않지만 열악하다고 할 수 있다. 그런 면에서 OTT가 주는 금전적인 매력과 가능성은 있다고 본다. 하지만 동시에 OTT는 빅데이터를 기반으로 만들어지니까 내 기획을 어떤 경우에는 희생해야 하는 상황도 생긴다. 이건 취향에 따라 다른 것 같다. OTT를 대상으로 기획을 할 때는 마인드가 달라야 할 것 같다. 좀 더 시장성에 중심을 두고 움직이는 거기 때문에 같은 소재라고 하더라도 접근방식이 달라야 한다. 이런 변화들 속에서도 결국 중요한 건 연출자의 시각과 크리에이티브한 해석이다. 그게 먼저 있어야 영상 언어가 가능해진다. 양주연: 마지막으로 해외배급을 고민하는 신진 창작자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감병석: 다큐멘터리를 만들다 보면 내가 내 눈을 못 본다는 사실을 기억해야만 한다. 내 눈동자를 보고 싶으면 거울에 비추어보던지 다른 사람 눈동자를 통해 나를 봐야 한다. 내 이야기가 좋은 것 같은데 내 앞에 있는 사람, 해외에 있는 사람의 눈동자에서 나를 비추어보면 그게 괜찮은지, 안 괜찮은지를 알 수 있다. 그런 관계들을 생각해보면 늘 내가 접근하는 방식에 대해 겸손해야 한다는 생각이 든다. 그 겸손은 질문이 따르는 겸손이다. 내 안에서 계속 질문을 하고 평등한 관계들을 구축해나가야 한다. 좋은 질문이 없으면 좋은 답이 없다. 인터뷰를 마치고 몇 년 전의 닥라이프치히 코 프로마켓(DOK Leipzig Co-pro market) 장면이 스쳐 지나갔다. 작은 책상을 사이에 두고 해외의 제작자, 배급사 직원과 서로의 눈을 마주 보며 이야기를 나누었던 순간. 20분이 안 되는 짧은 시간이었지만, 좋은 영화를 만들겠다는 공동의 목표를 나누며 힘을 받았던 시간이었다. 국제 공동제작이 모든 다큐멘터리 제작의 해답이 될 수는 없겠지만, 조금이라도 더 나은 다큐멘터리 제작 환경을 만들어줄 수 있다면 누구든 도전해볼 수 있어야 하지 않을까. 서로의 밝은 눈이 모여 불확실성이 가득한 다큐멘터리 제작 환경을 조금이라도 밝혀줄 수 있기를. 그 시작은 좋은 파트너를 알아볼 수 있는 나의 눈에서부터일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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